비젼힐스CC./최갑수
비젼힐스CC./최갑수

(미디어인뉴스=최갑수 골프칼럼니스트) 어릴적 엿치기 내기를 많이 해본 기억이 난다. 구멍이 크게 나 있으면 이기는 거다. 지는 사람은 엿 값을 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궁핍한 세상에서 잠시나마 시련을 잊고 웃어 보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지는 사람이 엿값을 내야 했지만 엿치기로 망하거나 친구 사이를 절연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은 참 내기를 좋아한다. 툭하면 내기할까? 를 통해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인정받으려 했다.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려는 승부욕 의 스포츠 중 하나가 골프이다. 타 스포츠에 비해 내기 방법이 가장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골프에 대한 욕심 뒤엔 항상 이겨야 했다. 그날 이기지 못하면 다시 날을 잡아 복수하려 했다. 

골프장 밖에선 서로 술값과 밥값을 내려 하지만 골프장에서 만원이라도 지면 속상해하고 쉽게 잊지 못한다.

돈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한타 라도 지면 나를 미워하게 되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길 수 있다고 다짐하고 자기합리화를 시키려 했었다. 

남해안 세인트루이스CC에서 필자의 샷.
남해안 세인트루이스CC에서 필자의 샷.

필자의 친구 중에 수천억 자산가가 있었다. 술값도 밥값도 여행경비도 언제나 나에게는 내지 못하게 했다. 너그러운 돈 많은 친구였다. 어느덧 골프를 같이 치게 됐고 내기를 하게 됐다.

벙커에 들어간 볼을 운 좋게 핀에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하고 나서 기쁜 마음을 여과 없이 만끽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표정을 읽지 못했고 두고두고 마음이 편칠 않았다. 

몆 만원을 딴 뒤에 그 친구와 다시 골프를 치기 어려웠었던 기억이 있다. 골프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인데 돈 많은 친구에게 돈을 땄다는 것이 그땐 희열이었다. 

골프만이라도 이겼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 후론 좋은 친구로 남질 못한 회한이 있다.

어느덧 골프를 알게 되면서 내기골프를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안보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과 바람,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퍼들은 내기를 안하면 재미없다고 흔히들 말한다. 골프를 유희로 알고 스포츠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고귀한? 철학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스코어로 승부하지 않고 일명 '뽑기'를 하면서 약간의 무례함을 달래고 친목을 다진다. 

페어웨이 잔디 아래 서로 부둥켜 안고 단단해지려는 속살의 뿌리가 보였다. 우리는 잔디 위 의 푸른 잎만 보지만 잔디전문가들은 잔디 밑에 뿌리가 얼마나 뿌리 내리고 튼튼한지 잔디의 내일을 이야기한다. 

잔디의 뿌리가 깊고 튼튼할수록 좋은 페어웨이를 유지하고 좋은샷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코어와 승리에 집착했기에 상대들에 대해 애증을 품었고 속병을 앓았었다. 자연을 보지 못했고 진정한 골프의 행복함을 몰랐었다. 

이젠 햇볕과 불어오는 바람, 잎들의 흔들림에 이젠 행복을 찾는다.

상대방이 잘못쳐 볼이 오비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졌을 때 말로는 안타까워했지만 속으론 즐거워 해본 적 들은 없는가? 

골프에서 남을 속이기에는 쉽다. 죽은 볼을, 없어진 로스트 볼을 살려내는데는 쉽다. 발로 슬그머니 차거나 주머니에서 알을 까기도 쉽다. 

넓은 자연이기에 잘 보이지가 않는다. 감독자가 본인이니 더 쉽다. 오비난 볼을 살리고 남의 공 을 내공으로 살려내는 것 역시 스스로 눈만 감으면 된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순간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나 두려움은 없었는지? 혹시 누군가의 눈에 목격되지 않았는지 하는 불안감에 다음 샷이 잘 맞을 수 없다. 

자주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별 의식 없이 볼을 잘 치는 강심장도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자기만의 양심은 속이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게다. 

필자도 필드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니 경험담에서 나오는 자기반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이제 내기골프를 하지 않는다. 가끔이겠지만 나를 속인 스스로에 대해 너무도 길게 여운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게다. 

내기를 안 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동반자들의 샷이 보이고 골프 동반자들의 입가에 웃음이 보인다. 동반자들의 샷에 “굿샷”을 진심을 담아 말해 줄수 있어 좋다.

곤지암 CC./최갑수
곤지암 CC./최갑수

천천히 걸어가면서 볼만 쫓던 그때와는 달리 지는 꽃 뒤에 영그는 열매들이 보인다. 
늘 푸른색 이어서 나뭇잎이려니 했지만, 자세히 보니 살을 찌우며 열매를 맺고 있는 속살의 모습도 보인다. 

삶이라는 건 내 위주의 생각과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지만 더불어 사는 삶도 보이기 시작한다. 골프는 자연과 더불어 생각을 깊게 하는 인문학적 철학의 운동기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우리가 플레이하고 온 뒤의 풍경과 골프 코스가 더 아름다웠다.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삶의 깊이를 놓치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잘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뒤돌아보는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 온다“ 말을 깊이 새기고 음미해 본다.

골프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지면 행복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과나무 열매가 영글어 가고 있는 모습에 행복해진다면 그날의 라운드는 만족스러운 라운드였지 아닐까?

폭우가 지나가고 밤사이 제법 스치는 바람이 가을에 가까이 와있습니다. 

코로나도 폭우도 아주 짧은 시간인데 우리들 에게 많은 상처를 줬습니다. 시련이 지나가고 넉넉한 황금연휴에 모두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골프칼럼리스트 최갑수 배상>

곤지암 CC./최갑수
곤지암 CC./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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